▒ ▒ ▒ ▒    조각가 김오성의 인체조각에게     ▒ ▒ ▒ ▒    
( 운문적인 석조石彫 여신女神들)  


---김용옥(시인, 수필가)---………p2

옛날식 표현으로 촌사람 같은 김오성 조각가. 그를 알게 된 건 순전히 예술애호벽藝術愛好壁 덕분이다. 해마다 국전을 빼놓지 않고 관람한 덕분이다.

1970년대 초반, 그가 국전國展에서 입선과 특선으로 이름을 냈을 때부터 나는 그를 기억했다. 내 고향 전북 출신이고 그때로도 드문 인체조각으로 입상했기 때문이다. 나는 서양의 인체조각에서 조각의 매력에 눈을 떴고 우리에게 마구 남발된 비구상 현대 조각은 기초 없는, 조잡한 예술 같았다. 아무나 할 수없는 아무것이나 예술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싸구려 예술 말이다. 그때에 그는 바보스럽게 인체석조각을 들고 나섰다.

그를 만나기 오래전,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여러 차례 만났고, 그의 조용하고 얌전한 효부孝婦 아내 허선 씨를 여러 번 만났다. 그 동안 그의 작품들과 여러 차례 만났다. 국전 특선작인 남성 조각상 <변산반도>, <활을 매는 여인>, <고요의 숲>, <침묵>, <꿈꾸는 밖새섬>, <고요>등등. 그의 조각은 언제나 말이 없지만 나는 그들 앞에서 나를 잊고 '그 어떤 사람'을 읽는다. 이렇게 그와 대화를 편안히 나누게 되기에는 그와 나의 나이가 육십갑자를 넘어서였다. 남녀를 따지지 않고 편히 만날 수 있는 건 순 나이 덕이다.

그는 점점 소문난 조각가가 되어 돈이 좀 쉬어지자 아스트로 피식스의 굴절 망원경을 사들여 조각공원 금구원 안에 국내 최초로 개인 천문대를 세우기도 했다. 물론 서울에 번듯한 집을 구할 돈으로 저지른 꿈의 실현이었다. 체구가 작은 그는 통이 크고 꿈이 원대한 위인이다.

천체망원경은 가시可視 밖의 세계를 꿈꾸게 한다. 어린애 같은 천진한 호기심 때문일까. 아니면 조각품에 우주 공간의 생기를 끌어 앉히고 싶은 것인가. 그는 이미 숱한 세월의 무게와 엄청난 에너지가 쌓여 이뤄진 돌덩이를 어르고 달래고 쪼고 날리어 새 생명을 품은 돌 조각을 탄생시킨다. 그는 궁극적으로 무엇을 탐미하는가? 어느덧 반세기 동안, 소우주인 인체에 탐닉하고 있다. 생명의 생산자인 여체에 심취한 그가 창작한 여체 조각상은 나에겐 여신상女神像이다.

 

금구원의 짙푸른 6월, 우거질 대로 우거진 등나무 그늘에 앉아서 늙어가는 시인과 조각가는 예술의 잡다한 역사와 사상과 자기 견해를 방담하고 있었다. 동서東西로, 과거와 현재로 넘나드는 그의 역사관과 예술혼이 새소리처럼 울렸다.

"꼭 10년 동안 뵙고 싶은데 못 만난 노화가가 있습니다. 조각가 ○○○교수가 소개해준다고 하고선 여태껏 미루고만 있어요. 돌아가시기 전에 뵙고 싶은데... 하반영 선생님이란 화가인데..."

"그렇게나 뵙고 싶은 분이어요? 내가 소개해 드릴 수 있는데..."

이 대답을 하게 된 건 순전히 그의 천체망원경 때문이었다.

하반영 화백은 이 지구와 인간을 무한으로 확대 확장하는 위대한 사상가다. 그는 이미 생의 도道를 이루었으며 그 도를 미술혼으로 구현한다. 불가시의 우주 공간과 영원성의 시간 속에서 생명 곧 소우주가 탄생하였음을 간파한 분이다. 그는 미술로 그의 인간 사랑과 우주 사상을 재현한다.

차마 나는 하반영 화백을 이성적 객관적 관계로만 표현할 수가 없어 침묵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자기의 신념을 인체조각에 몇 십 년간 불살라온 조각가가 10년 동안이나 붙잡고 온 소원을 풀어주고 싶지 않으랴. 노화백의 천금 같은 시간을 축내는 일이지만, 아직 무르익지 못한 김오성에겐 천금 같은 만남일 테니까. 예술혼을 꿈꾸는 자만이 예술혼을 만나는 행운을 가져도 되는 것이다. 나는 건널다리가 되기로 했다.

장대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 특이한 두 예술가가 만났다. 노화백은 느리게 앉은 의자에서 몸을 돌려 바라보았고 조각가 부부는 넙죽 큰절을 올렸다. 하 화백께선 당신이 만났던 세계 곳곳의 조각상에 대해 그 아름다운 조화와 미래의 조각 미술의 가치를 예견해 주셨다. 기억창고 속 예술 사전의 또 다른 페이지를 펼치어 읽어주는 것처럼 재미났다. 어찌 저 많은 것들을 보고 기억하실까!

그렇다 예술가(화가, 문학가, 음악가든)는 사람과 만물을 보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한다. 그 연후에 사유하고 상상하여 창조 능력을 계발하고 탐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