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조각가 김오성의 인체조각에게     ▒ ▒ ▒ ▒    
( 운문적인 석조石彫 여신女神들)  


---김용옥(시인, 수필가)---………p3

김오성씨는 간곡히 청하여 하 화백의 손, 그 길고 도톰하고 부드러운 손을 어루만졌다. 두 예술가의 손이 만났다. 예술 창작의 섬세한 도구들이 만났다. 사진을 이리 찍고 저리 찍었다. 김오성씨는 오래전에 <농부의 손>을 조각했는데, 이제 <화가의 손>을 쪼아 보려나. '그 손을 내게 준다면 참 좋겠다.'고. 떡 줄 놈은 아무 생각도 없는데 나는 김칫국을 마셔본다. 마호메트는 두개의 빵이 있으면 하나로는 꽃과 바꾸라 했던가. 하나는 빵을 생산하는 <농부의 손>이요, 하나는 인생의 꽃인 예술을 창작하는 <화가의 손>이 될 터인데.

조각가의 지위는 14세기 르네상스 시대까지도 공간적 도형을 제작하는 수공업자였다. 16세기에 들어서자 조형 예술은 7가지 교양학문의 한 과목으로 채택되었고, 조각을 단지 수공업제품이 아니라 정신의 미적 산물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조각은 손 노동의 결과물로서 3차원적 공간도형으로 존재된다. 비로소 예술적 가치를 획득한 것이다.

현대의 조각은 기이하게 변모 발전하여 기형적 조각품이 남발되고 있다. 어지러운 현세와 현대인이 그대로 드러난 결과라고 할까. 이해하기 난해하다기보다 타락하고 추악한 현대인이 자화상 같아서 찡그려지고 짜증이 날 때가 종종 잇다. 이미 미술이 미술美術이 아니라 쓰레기더미 같고 추하게까지 느껴져 황당할 때가 더러 있다. 마치 문면에 침범 당하여 망가진 자연을 보는 것처럼 의아하고 섬뜩하다. 예술에도 날아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새로운 시대가 과거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지만, 예술은 영속성 나아가 영원성을 가질 때 예술다우며 예술인 것이다.

 

나는 손에 대하여 단순하고 진솔한 소견을 갖고 산다.

손이 하는 일 중에서 가장 선한 일은 음식을 만드는 일이고, 가장 어렵고 기술적인 일은 악기를 연주하는 일이다. 가장 아름다운 일은 미술 그중에도 조각을 창조하는 손이다. 애초에 손은 인간이 자연과 관계를 맺게 하고 문화의 밭을 경작하게 한 명기名器다.

 

김오성 조각가가 낳은 인체조각들은 자연풍광 속에서 어떤 말 한마디 없이 그냥 그대로 있다. 빛과 바람과 비가 그들을 어르기도 하고 후려치기도 하건만 언제나 침묵하고 있다. 그러나 찬찬히 말을 걸어보라. 조금만 사색할 줄 안다면 작품 표면에 깔려 있는 생명력과 그들의 침묵이 말을 걸어올 것이다. 그래야만 조각가와 감상자가 진정으로 소통하는 것이며 비로소 예술가치가 완성되는 것이다. 언제나 예술작품은 작가의 고독만큼 고독한 것이다.

나는 화강석으로 조각된 <유한과 무한에 대한 사유>를 좋아한다. 꼭 나처럼 책을 펴 들고 누워있는 여인의 편안한 모습이다. 그녀가 들고 있는 책 속에는 어떤 문자가 들어 있을까. 그 조각을 볼 때마다 나는 새로운 문장을 쓴다.

백 년의 시간 천 년의 세월을 침묵하라. 돌 조각의 피부 안에 역사가 깊어지고, 그들의 어머니 김오성 조각가가 죽어도, 그의 미의식을 깊어지게 하라. 그리하여 그의 조각에 말없이 앉아 있는 그의 예술혼을 후세인이 보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