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具象
美術에의 招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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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항섭(미술평론가)---p2 | |
그의 작품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인체조각으로서의 자기 숨결, 즉 조각의 피부
안쪽에 있는 생명력이 어떻게 표층을 뚫고 나와 전체적인 형상 속에 응결되는가에 있다. 그의 조각은 사실적이면서도 실제로는 단순화되어 있다. 볼륨과 동세감은 인체조각에서 생명력의 표출과 직결된다. 따라서 사실적인 조각에서 세부묘사는 필연적인 요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에서는 세부묘사가 얼른 눈에 띄지 않는다.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세부묘사 자체가 생략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시각적인 식별일 뿐, 세부묘사를 무시하거나 생략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차라리 비표현적인 부분을 나타내지 않았다고나 할까. 그렇다. 그의 인체조각은 세부로서의 면에 대한 표현 가능한 한 억제하는 대신 동체 표현에 충실하고 있다. 사실적인 조각에서 세부묘사는 물론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세부묘사가 아무리 충실해도 동체가 충실하지 못하면 그 조각은 작품성을 얻을 수 없다. 조각은
언제나 세부묘사보다는 전체성으로 그 예술적 가치를 논할 수 있을 뿐이다. 물론 세부의
완성은 전체의 완성과 결부된 문제로서 세부적인 묘사가 무가치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세부묘사는 그 조각의 성격에 따른 당위성으로 설명될 수 있어야 한다. 이 때의 세부묘사란 그 형상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데 지나지 않는 것이다. 작가가 하나의 형상을 마음속에 그려냈을 때 거기서 세부묘사가 차지할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다. 세부묘사는 실제 작업이 행해지는 순간에 하나의 의무처럼, 또는 습관적으로 이루어지는 부수격인 효과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품의 내용 및 성격에 따라 굳이 세부묘사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석조는 작가가 어떠한 인체의 존재를 가정했을 때 거기에는 그 돌의 크기에 적당한,
또는 작가의 작의에 따라 일정한 형상이 자리하게 되다. 그러므로 작가의 행위란 이미
자리한 그 형상을 찾아들어가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작업방식은 소조의 역순을
거친다. 소조는 작가의 마음에 일어난 상을 빈 공간에 설정한 뒤, 그 상에 빈틈이
생기지 않을 때까지 흙을 쌓아올리는 방식을 따른다. 그러므로 소조는 가변성을 지닌다.
설령 완전한 상이 마음 속에 그려진 상태라 할지라도 작업을 진행하는 동안 최초의 상이
작가의 심인에 의해 변해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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